자랑스런 동문 - 배우 이서환님 인터뷰
"누군가의 기대와 꿈이 아닌 내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세요"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92학번. 동문출신 배우 이서환님을 만났다. 오징어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개성 넘치는 연기로 활약중인 그의 인생과 학창시절 추억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한 30학번 차이나는 독어독문학과 재학생 2명은 대배우이자 대선배의 호소력 짙은 메시지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출신 배우 이서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질문 1
배우 이서환님께서는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92학번으로 동문이십니다. 당시 92학번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학생으로서
대학 생활에 대한 추억과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서환님 답변
저희 때만 해도 학력고사를 통해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인천대학교 모 학과에 지원하려 했다가,
즉흥적으로 독어독문학과로 지원을 변경했죠. 솔직히 당시에는 ‘대학교를 가는 게 꿈이었지,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해야겠다’ 라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학에 들어간 다음 구체적인 목표가 없이 그냥 동기들·선배들과 끈끈하게 놀았던 것 같아요. 그 시절 대학은 저에게 신세계 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독일어 공부를 조금 잘했던지라 군대가기 전까지 성적도 제법 좋았고, 술도 제법 했던 것 같습니다.
MT 가서 술 마시며 동기들끼리 서로 보듬어주고 울고 웃고, 서로 진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죠.
그 당시 밤 공기와 향기, 그리고 분위기가 켜켜이 쌓여서 제 대학생활의 큰 산을 이루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질문 2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시고 졸업 후, 배우의 길을 선택하시게 이유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서환님 답변
특별한 건 없고요. 독어독문학과에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문학인데요. 괴테를 중심으로 해서 수많은 훌륭한 희곡들을 접할 수 있었고요.
특히 인천대 독어독문학과는 1년에 한 번씩 학술제를 하고 그 중심에 항상 연극이 있었어요.
저는 당시 1학년때 부터 학술제 행사에서 연극을 했었고 군대 갔다 와서 3학년때 학술제 총기획을 맡아서 해본 경험도 있습니다.
아마도 무대에 오른다라는 느낌, 일종의 쾌감을 그때 맛을 본 것 같아요.
이후 교직 이수를 하면서 대학 졸업 후 선생님이 되고자 교생 실습을 해보니 제 적성과 맞지 않더군요.
그 후 다른 꿈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방황하는 와중에 우연히 대학로에 갔다가 예전 인천대 독어독문학과 시절
학술제 때 했던 기억을 살려 연기에 대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초창기 연기 분야 비전공자로서 한계도 느꼈고, 반대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험난한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력도 많이 했죠.
그리고 결국 오늘날 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질문 3
이서환 배우님께서는 극중에서 수많은 배역들을 맡아 오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과 함께
현재 이서환님과 캐릭터가 똑같이 닮은 배역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서환님 답변
우선 오징어게임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당시 오징어게임 1편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적임 배우를 캐스팅 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저한테 배역 의뢰와 함께 연락이 왔는데 마침 그때 저에게 다른 작품이 없었던 상황이었고, 극중 배역의 비중이 높지 않아 부담 없이 참여했습니다.
솔직히 오징어게임이라는 제목이 생소했고, 속된 말로 대박 터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모습, 대학교 1학년 20살 때 친구들하고 놀던 그 시절, 그리고 스물여덟 스물아홉 학교 졸업 후 백수 시절
제가 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극중 역할에 투영했습니다.
그런데 오징어게임 1이 잘 되었고 이어진 2편에서 저를 다시 섭외하더군요.
물론 감독님이 제 연기에 대해 만족하셔서 저를 호출하셨고,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 일원으로서 초대되어 기분 좋았습니다.
다만 결코 오버하지 않고 오징어게임 1과 같은 분위기로 가능한 힘 빼고 제 모습 그대로를 연기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은 짜릿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천문’ 이라는 영화를 촬영했을 때입니다.
한석규 선배님과 최민식 선배님이 등장인물로 나오시죠. 저는 그때 내관으로 나오거든요.
영화에서 두 배우가 궁궐 앞 계단 위에 앉아 하늘 보면서 도란도란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 주위에 궁녀들이 있지만 뒤에서 이 두 분을 지켜보고 있는 역할을 찍고 있는데, 내 앞에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연기를 실감나게 하시는 거에요.
그때의 몰입도는 단연코 최상이었고 제가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지금 내가 조선시대에 와 있나?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질문 4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당시에 찍었던 그 작품들은 힘을 들인 게 아니라 그냥 있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역할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이서환 배우님의 그런 우직한 연기에 극찬을 하시더라고요.
이서환님 답변
저는 연기를 하거나 노래 부를 때 ‘이렇게 만들어야지’, ‘사람들 심금을 울리겠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사실 저는 연기 전공자가 아니니까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잖아요. 물론 연극을 배운 적은 있지만 어떤 테크닉에 대해 접근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청자들께서 극중 제 역할을 보시면서 ‘내 주위에 흔히 보이거나, 아는 사람 같은데’ 라는 느낌을 종종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어떤 대사를 구현할 때 생활감이 묻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생활감을 저에게 최대한으로 대입시켜 보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느끼고 보고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연기의 소재가 되어주죠.
그 연장선에서 사람들이 저에 대해 ‘연기를 하네’ 가 아니라 ‘일상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제 대학시절 선배 한분이 ‘노래를 부를 때 가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경험해 보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불러선 안된다’ 고
따끔하게 충고해 주셨는데, 오늘날 제 연기의 일종의 지침서 같습니다.
질문 5
드라마 또는 뮤지컬 등 이서환 배우님을 찾아 극본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배역을 고를때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이서환님 답변
사실 저는 이미지가 국한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역할이 들어왔습니다. 극중 나쁜 역할과 좋은 역할, 그리고 찌질한 역할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착한 아버지의 배역도 들어오고 정말 다양했죠. 솔직히 저는 어떤 배역을 고르고 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배역에 대해 ‘어떻게 어떤 호흡으로 연기를 하면 설득이 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끝나고 나니 큰 역할의 작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이제 어느덧 드라마를 이끌어가야 되는 그런 포지션이 되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을 해야 되겠더라고요.
질문 6
오늘날 수 많은 역할을 맡으면서 사람들에게 때로는 감동도 주시고 하시는데요. 배우 이서환님의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이서환님 답변
저는 대학교 졸업하고 가수가 되려다가 거기서도 약간 좌절을 맛봤어요. 그러고 나서 약 1년 가량 백수 생활하면서 앞길이 막막했죠.
다만 예전에 학술제 때 사람들과 즐거웠던 기억과 어설프게 알고 있던 연기 경험을 토대로 오디션 포스터를 보고 도전했는데 마침 붙었고
프로 무대에 서보고 나니 제가 뭘 배워야 되겠는지 알겠더군요.
음. 제게 힘의 원천이라고 하기에 좀 거창하지만 ‘마침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았다’ 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기대와 꿈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시작하면서 결국 업으로 삼게된 것 같습니다.
질문 7
배우 이서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92학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신입생 이서환을 마주한다면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서환님 답변
배우로서 알려주고 싶은 것과 어른으로서 알려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먼저 어른으로서 알려주고 싶은 것은 ‘20살 21살까지 너무 방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 보라’ 고 얘기하고 싶어요.
해외여행을 하거나 하물며 우리나라 저 오지를 가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치열하게 경험했으면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꼭 연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되면서 삶을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죠.
그리고 배우로서 말하자면 더 다양한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평소에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전철에 앉아서 밤 11시에 술이 약간 취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 직장인 아저씨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1호선의 빌런들, 그분들도 인터뷰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런 수 많은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면 재미도 있고 사람에 대한 편견도 떨치면서 연기의 폭도 넓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시간이 적어도 20대 때는 가능해요. 그리고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서 물어보면 돼요. 저랑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질문 8
예전에 인천대학교 졸업하시고 사회생활 하시면서 먼발치에서 또는 학교를 보실 때마다 변화상을 느끼실 텐데요.
오늘날 인천대의 변화된 모습을 보시면서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십니까?
이서환님 답변
제가 결혼하기 전에 살았던 집이 제물포 역 근처였어요. 자연스레 인천대학교의 흥망성쇠를 다 지켜볼 수 있었죠.
특히 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닐 때 저희 집은 당시 인천대학교 주변 골목 쪽에 있었고요.
인천전문대 학생들과 인천대 학생들의 아침 등교 모습을 볼수 있었죠.
추후 인천대학교 학생이 되어서 친구들과 그 골목길을 다니고 제물포역 인근에서 술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던 기억이 있죠.
지금은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이전해서 가끔씩 방문하게되면 어마어마한 변화에 깜짝 놀라기도 한답니다.
예전 제물포 시절 건물 3~4개 정도였던 대학 캠퍼스가 이제는 넓은 부지 안에 쾌적한 학교 건물과 시설들로 조성되어 있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인천대학교가 국립화되면서 대학의 여러 여건이 좋아지고 있어 뿌듯합니다.
다만, 인천대학의 국립화 과정에 선배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는 점을 재학생들이 기억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저희때는 캠퍼스가 다소 좁을지언정 그 속에서 학생들이 흩어지지 않고 다 같이 모여
대동제와 체육대회를 즐기며 신바람 나고 정겨웠던 예전의 추억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질문 9
인천대학교 동문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재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서환님 답변
지금 20~30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제가 알기에는 부족해서 조언을 한다는게 사실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삶을 빗대어 첨언 정도의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꿈을 이루는 것이 내 가족들을 위한 길이었어요.
‘내 꿈을 위해 연기를 계속하고 싶지만, 가족들을 위해 당장 배달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연기를 접지 않았어요.
그래서 ‘와이프랑 아이한테 미안하지만 어쨌든 저는 이 바닥에서 내 꿈을 이루어내는 것이 내 가족들을 위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 젊은 친구들도 현실을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냥 살아가는 게 목표라면 너무 의미 없지 않을까요?
우리 후배들은 좀 더 멀리 내다보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일찍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더라도, 설령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먼 시간이 지나 여러분들 꿈에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내가 이 순간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결국 오늘 하루를 그냥 사는 것이 되어버릴 테니까요.